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와세 히토키 (문단 편집) === 데뷔 초창기 === 프로 데뷔 후 줄곧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. 데뷔 시즌이었던 1999년 이와세 히토키-[[오치아이 에이지]]-[[이상훈(좌완투수)|이상훈]]-[[선동열]]로 이어지는 황금 불펜진을 구축해 루키 때부터 한국팬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.[* 선동렬이 1999년 급격한 노쇠화를 드러내며 이름값으로 마무리 한다는 소리 듣다가 시즌 끝나고 은퇴, 1998년 무리한 선발도전으로 부진한 이상훈은 이해에 불펜에서 밥값하고 미국 진출 했기때문에 딱 한해만 볼 수 있었다.] 2003년까지 계투로 뛰다[* 그때까지 선발투수로서 등판한 경기는 2000년 단 한경기였다. 여담으로 이 경기는 NPB 공식전에 등판한 1천경기 중 딱 한 경기인 [[선발 투수]] 출장경기로 2000년 10월 8일 [[히로시마 도요 카프]]와의 경기다. 결과는 7이닝 7피안타 1자책점의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되었으며 당연히 이는 이와세 커리어 유일의 선발승[* [[https://twitter.com/i/events/1045146578132951040?lang=ca|기록지]], NPB 통산 50승 이상을 거둔 투수 중 선발등판이 아예 없는 투수는 [[이가라시 료타]]가 유일하다.]이다. 이 승리로 데뷔시즌에 이은 2년 연속 10승(!) 투수가 되는 것을 확정지었다.]가 기존 마무리였던 [[오츠카 아키노리]]가 [[메이저 리그 베이스볼]]로 이적하고 [[오치아이 히로미츠]] 감독이 부임한 2004년부터 [[마무리 투수]]로 전향하였다. 물론 마무리로 지명되자마자 부상을 당하긴했지만 뛰어난 활약을 하며 주니치와 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. 하단에 후술하겠지만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도 했고, 2004년과 2006년의 리그 우승, 그리고 [[2007년 일본시리즈]]에서 팀의 5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[* 우승이 결정된 5차전에서는 8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이어가던 선발 야마이 다이스케 다음으로 등판해 한 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무이한 합작 퍼펙트 게임(비공식)을 기록하기도 했다. 이 경기의 뒷이야기는 [[퍼펙트 게임(야구)]]와 [[2007년 일본시리즈]] 항목에 서술되어있다. 일본내에선 아예 2007年日本シリーズにおける完全試合目前の継投라는 제목으로 위키백과 항목이 따로 만들어져있을정도로 일본내에서 이와세 기용에 대해 찬반이 갈린 경기이기도 하다.]이 되며 주니치 황금기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다. 그렇게 2008년에도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40IX0b1GrCo|알렉스 카브레라한테 프로 통산 첫번째 끝내기 홈런]]을 맞긴했지만 성적이 확실히 그 前 해 활약이 워낙에 좋았고 2008년 활약도 나쁘지않았기에 당연히 국가대표에 승선해서 베이징 올림픽에 나오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